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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前을 회고하며

2013-04-04 · 조회 4,230

50년 前을 회고하며  
                               -감사와 보은의 뜻을 기려야                                                                         
     
일생을 살아오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겪게 된다.     
그 중에서도 항상 마음속에 각인되어 평생을 안고 가는 기억들이 다수 있다.     
2013년 새 달력을 보면서 지금부터 50년전의 일들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나고 관여하고
도움을 준 분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지금부터 50년전 1964년 8월 23일 모교 대화재로 교사가 전소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43년 전에 지은 모교 교사의 구관 10개 교실과 본관 13개 교실 및 부속 건물을 모두 전소시키는 대참사였다.     
한.미 소방대의 필사적인 진화작업에도 묵고 낡은 목조건물은 걷잡을 새 없이 타 버렸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이날 축구부 선수들이 제8회 전국 중고교축구대회를 앞두고 합숙훈련을 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학적부 등 중요서류를 화마 속에서 구할 수 있었다.   
이런 악전고투 속에 기력을 모두 쇠진한 우리 축구부는 다음날 열린 제8회 전국 중고교축구대회에서
강호 동북고등학교를 3:1로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경기가 끝난 뒤 부산 공설운동장은 일순 눈물의 바다로 변하였고 바로 전날 화재로 교사가 전소되는
악재를 겪고도 강인한 의지와 뜨거운 애교심으로 이를 극복하고 우승한 모교 선수들의 그 정신력에 관중들은
스포츠가 주는 감동과 인간의 정신력의 위대함을 여과 없이 느꼈을 것이다.     
불이 나던 날 나는 나의 고향인 송정해수욕장에  있다가 화재 소식을 듣고 슬리퍼를 신은 채로 급히 학교로 달려왔다.
그 참담한 광경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황망중에 교사들과 함께 학교 학적부 등 중요서류를 운동장으로 옮겼다.     
나는 그때 서울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고향에 볼 일이 있어 내려 왔을 때였다.     
그 때의 모교는 강삼영(1회 졸업)교장이 재임을 하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서 강교장선생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노선배를 진정시키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어떤 방도를 찾아보겠노라고 위로의 말을 하였다.   
이 말에 책임을 느낀 나는 그 길로 상경하여 공화당 정책실장으로 있는 김성희(15회)     
선배에게 보고하였고 을지로 입구에 있는 공화당사 정책 연구실에서 재경동창회 간     
부회의가 개최되었다. 의논 결과 예산이 없으므로 내년 예산에 반영코자 힘을 모으기로 하였다.   
또 다른 길을 모색하기 위해 동기인 양이우의 형님인 양찬우장관을 방문키로 하였다.  
   
아침 7시에 그 당시 내무부장관을 하고 있는 양찬우장관댁을 찾았다.     
새벽 일찍 1톤 화물차를 몰고 장관댁에 무작정 들어가 면담을 요청하였다.     
양장관은 사정이야기를 듣고 민족학교인 동래고등학교가 전소되었는데 빠른 시간에     
복구를 하여야 한다는 나의 요청에 흔쾌히 동조하고 도움을 약속하였다.     
양찬우장관은 여러 관계요로에 전화하여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러한 노력으로 전소된 지 4개월 만인
12월 31일 본교 교사 신축 제1차 공사가 착공되었다.    

여기에는 또 그 당시 동래구 국회의원인 민주공화당 소속 양극필의원의 지원도 함께 하였다.
양의원은 건설분과위원회 소속이었고 국회 예결위원도 겸해 있었다.     
이러한 정계.관계의 여러분들이 힘을 써서 모교의 신축공사가 빠른 시간에 재개될 수 있었고
그 중에서도 양찬우장관과 양극필의원의 공을 잊을 수 없다.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 없어 그 고귀한 업적을 학교에 남겨 두고 두고 기리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공사 기간에도 틈틈히 내려와 현장을 둘러보고 부실 시공 없이 단단히 지으라고 현장을 독려하였고
그리하여 건립 50년이 되어가는 모교 교사는 아직도 안전도 검사에서 양호를 받고 있다.     
모교 교사 신축과 더불어 또 한편 생각나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은 정사용교장과 안종수 선생이다.     
정사용교장과 안종수선생은 모교 16회 졸업생으로 1967년 정사용교장이 학교로 부임하였다.     
정사용교장이 부임해 올 때마다 안종수선생도 함께하여 정교장은 학업에,
안선생은 축구부 인재 양성에 큰 업적을 이루었다.     

정사용교장의 학교사랑과 후배에 대한 애정은 43회부터 52회까지의 후배기수들은 다 알 것이다. 
2층 교장실에서 기숙까지 하면서 후학들에게 열과 성을 다하였고 지금의 학교 교정     
의 조경도 심혈을 기울여 쾌적한 면학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동고중흥을 위한 정사용교장의 노력으로 52회 기수에서는 서울대학교에 60여명이라는 많은 후배들이 합격하였다.     
또 한편으로 동래고가 축구의 명문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안종수선생의 공이 대단히 컸다.     
안종수선생은 경남 김해군 진례면에서 출생하였다. 동래고 재학 시절 뛰어난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고
졸업 후 당대 최고의 팀이었던 연희전문으로 진학하여 선수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축구 국가대표로 당당히 출전하는 등 오랜 기간 국가대표 생활을 하였다.
은퇴 후에는 헌병감실 코치, 제일모직 감독, 66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감독,
대한축구협회 상벌, 선발, 기술 등을 역임하여 한국 축구계에 큰 공헌을 쌓았다.
이후 끝없는 모교사랑으로 61년, 64년, 72년 세 차례에 걸쳐 모교 축구감독을 맡아서 사재를 털어
축구부 육성에 지원 하였고, 김  호, 김호곤, 박영태, 박상인, 박성화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직접 발굴, 지도하여
대한민국 축구계를 이끌어갈 동량으로 육성하였다.
 
현재 동래고등학교 축구부 OB회는 뜻 있는 회원들의 성금을 모아 그의 업적을 기려 흉상을 건립할 계획에 있다.     
위의 여러 분들을 회고해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도 느끼고 지금은 모두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이에 그 분들의 업적을 후배들에게 알리고 우리 후배들도 그 선배님들의 숭고한 동고     
사랑을 기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잠시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특히 우리 동고는 고마운 분께 감사를 할 줄 알고 "동고인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는
빛나는 전통을 이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재경총동창회 명예회장   신동일(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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